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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선포와 철회, 온라인 연대 참여 그리고 탄핵안 부결 본문

일상

계엄령 선포와 철회, 온라인 연대 참여 그리고 탄핵안 부결

TTOROM 2024. 12. 9. 22:01

시국이 이래서 관련된 얘기를 블로그에 안 쓸 수가 없다.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밤중 기습 선포한 계엄령의 공포가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과거 계엄령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전쟁에 대해서라면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은 할머니의 생생한 이야기로 들어왔고,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탄압을 잔혹하게 그린 애니메이션을 보고 교육받은 터라 그 여파와 잔혹함은 알고 있다. 더욱이 내게 공포로 다가온 점은 계엄령이 내렸었다는 사실을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야 알았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기상 상태와 실종자 얘기로 울려대는 경보 문자가 잠잠했다는 게 소름 끼쳤다. 어찌저찌 천운으로 넘어간 이번과 달리 다음은 없을 수도 있다는 서늘한 공포가 마음 한쪽에 자리 잡았다.

 

12월 7일, 윤석열 탄핵과 더불어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표결이 붙여졌다. 그날 국회 앞에서 탄핵 촉구 시위가 크게 있었지만, 공황이 심한 나는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후원금을 입금하고, 탄핵 촉구 서명을 하고, 인근 음식점에 선결제하는 등 현장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다 했다. 표결에 붙여지는 오후 5시 이전, 불안한 마음을 누르려고 게임을 켜놨지만 오후 4시가 넘어가자 도저히 불안함을 참을 수 없었다. 평화롭게 게임을 하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보니 그래도 탄핵안 표결만큼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 지켜봐야 하지 않나 싶었다. 결국 오후 4시 40분쯤부터 나는 게임 내 대도시를 여러 서버로 돌아다니면서 '잠시 후 오후 5시, 윤석열 탄핵 및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본회의가 시작합니다. 관심 갖고 지켜봐 주세요.'라고 외치고 다녔다. 같은 내용으로 파티 모집도 올렸다. 곧이어 다른 몇몇 사람들도 비슷한 내용의 파티 모집을 올리며 관심을 촉구했고, 어떤 사람들은 게임 내 대도시에서 온라인 연대를 하자는 모집 글을 올렸다. 나는 그 글을 보자마자 그곳에 합류했다.

 

곧바로 오후 5시가 되었기에 자리에 캐릭터를 세워두고 인터넷으로 뉴스 라이브를 시청했다. 간간히 분노할 일이 나올 때마다 게임으로 돌아가 연대에 동참한 사람들과 채팅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초반에 열몇 명이 모여있을 때와 달리, 라이브를 보다 게임으로 돌아갈 때마다 자리에 참여한 사람들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나중에는 캐릭터 수 표현 제한 때문에 서른 명 즈음만 보였지만 알고 보니 그 자리에 족히 백여 명은 모여있었다. 연대 표현 방식도 그저 모닥불 앞에 앉아 있는 것에서 파란색 옷을 입고 파란 응원봉을 흔드는 로 자세도 바뀌었다.

물론 사람이 많이 모인 만큼 문제점도 생겼다. 마치 실제 시위를 하는 양 과몰입해 채팅하는 사람들이나 티배깅을 하는 사람, 욕설로 도배된 채팅 등 난리였다. 역시나 후에 SNS를 통해 온라인 연대를 문제 삼은 글이 게시되었고, 여러 의견이 대립했다. SNS의 특성상 짧은 문단으로 축약되어 서로 오해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모두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온라인 연대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과몰입하여 실제 시위라고 생각하는 건 문제이고, 이왕이면 실제 시위에 참여해 달라는 거였다. 

 

탄핵안은 결국 부결됐다. 탄핵이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오른 뒤 첫 시위임에도 백만 명이 넘게 모인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부결될 가능성이 높았고 탄핵은 장기전이란걸 이미 경험했기에 의연히 넘길 수 있었지만,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국회를 퇴장해 버린 것은 충격적이었다. 차라리 반대표를 던져서 부결됐으면 이렇게 화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민을 대변해 투표하라고 뽑힌 의원들이 투표조차 하지 않은 행동은 끔찍하게 실망스러웠다. 뉴스 라이브로 보고 있는 데도 분노로 가슴이 아프고 숨이 가빠 기절하지 않기 위해 몇 시간을 심호흡하며 버텨야 했다.

 

그러나 나처럼 사람이 많은 곳을 힘들어하거나 몸이 불편한데도, 시위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알고 있음에도 나섰던 지인들이 많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그들에게 빚을 지는 느낌에 심장이 죄였다. 수고했다, 무사히 귀가하라는 말에 '너도 마음 쓰느라 고생했다'라는 말을 받는 순간 너무나 부끄러웠다. 현장 시위에 나간 너만큼이나 수고했을까. 

계엄령 다음날, 윤석열을 뽑았던 어머니와 통화했던 순간이 생각났다. 이전에도 윤석열이 이상한 짓을 할 때마다 얘기해 보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어색하게 웃으며 대화를 회피하시곤 했다. 그러나 설마하니 계엄령을 내린 것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안 할 줄은 몰랐다. 보나 마나 시위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연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순간 그것이, 이유야 어찌 됐든 시위에 나가지 않기로 한 나와 비슷해 보였다.

결국 나는 이번 주 토요일부터 매주 시위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에게도 일말의 책임감과 양심을 느끼게 하고, 매체를 건너뛰고 사람들과 연대하고 싶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민주주의 국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분노와 절망보다 앞섰다. 혹여나 2차 계엄령이라도 내린다면 이 글은 나를 위험하게 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글을 쓰며 느끼는 공포가 오히려 내 등을 떠미는 느낌이다. 그런 공포를 느끼니 나가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