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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모아나2> 감상 후기, 수원역 롯데시네마 최고의 좌석 쾌적함 본문

일상

<위키드><모아나2> 감상 후기, 수원역 롯데시네마 최고의 좌석 쾌적함

TTOROM 2024. 12. 2. 19:46

 

요즘 주변에서 화제되는 영화 <위키드>. 그리고 <모아나2>도 개봉한다길래 오랜만에 영화관으로 외출했다. 한 번 나가면 할 거 다하고 와야 하는 내향100% 사람인지라 하루 종일 수원역 롯데시네마에서 두 영화를 관람했다. 제작년 말부터 작년 초 <아바타2>를 반복 관람하며 처음으로 수원역 롯데시네마를 이용했었다. 당시 <아바타2>를 본다고 방문했던 전국에서 시설 좋기로 손꼽히는 영화관들을 다 제치고 좌석 쾌적함으로는 원탑인 곳이다. 하루 종일 영화를 볼 예정이라 일부러 이곳을 선택했다.


 

*영화 스포일러 포함!! 그리고 개인적인 감상이니 참견 안받음

 

<모아나2>를 먼저 봐서 이것부터 감상을 쓰겠다. 총평부터 먼저 하자면, 전체적으로 <모아나1>보다 완성도가 떨어지나 나에게는 <모아나1>보다 감명 깊었던, 인간의 성장을 섬세히 그려낸 애니메이션이었다.

솔직히 초중반부는 매우 루즈했다. 전편에 비해 이펙트 있는 음악도 없었고, 연출적인 부분도 참신하지 않았다. 그래픽 면에서도  디즈니가 매번 3D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뛰어넘어왔던 점을 생각하면, 이번에는 다소 정체된 느낌이었다. 동료 캐릭터들은 여느 애니메이션에서 본듯한 전형적인 설정으로 매력이 전혀 없었다. 모아나의 성장이나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부분도 전혀 없었으니 차라리 없는 게 나은 병풍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모아나가 여정을 떠나는 이유도 공감하기 힘들었다. '섬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겠다'라는 명확한 문제가 있는 1편과 달리 2편의 목표는 '바다 넘어의 다른 사람을 찾겠다'였는데, 바다 너머에 당연히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심지어 실시간으로 교류하고 있는 현대인으로선 그다지 공감 가지 않는 목표였다. 

 

하지만 후반부는 이야기가 달랐다. 일단 문제 해결의 주체가 오롯이 인간 모아나였다는 점이 좋았다. 1편의 동료이자 2편에서도 등장한 마우누이, 반신 동료의 활약이 거의 없었고 심지어 모아나가 가진 초인적인 능력-바다와의 소통도 없었다. 오직 인간 모아나의 힘과 의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니 '신화를 써 내려가는건 신이 아니라 영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한 뒤, 모아나가 목숨을 잃는 비극도 고전적인 영웅 서사를 보는 것 같았다. 이런 점이 <모아나> 시리즈가 하와이의 신화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라는 점이 잘 드러났다.

모아나의 부활 연출도 섬세하고 좋았다. 반신의 자격을 얻어 부활하는 과정은 마치 인간들의 마음이 모인 결과 같았다. 신이 자격을 내려준 것이 아니라, 모아나의 길을 선행했던 사람들의 영혼이 모아나에게 힘을 준 것 같았달까. 영혼들이 모아나를 살릴 때, 바다가 자주 보여줬던 소용돌이 문양을 하고 서있는 연출을 보니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모아나의 초인적인 능력이었던 '바다와 소통하는 능력'에서 사실 모아나가 소통한 건 바다가 아닌, 바다에 잠긴 영혼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지막으로 모든 바닷길을 연결하는 섬을 끌어올린 뒤, 다른 섬의 사람들도 안개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에도 인상 깊었다. 그 캐릭터들도 모아나를 보고 잔뜩 상기된 얼굴로 기뻐하는 걸 보니, 모아나 외에도 많은 캐릭터들이 꿈을 가지고 불가능에 도전해왔었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현실에서도 업적을 최초로 해낸 사람만 기억하지만 그 뒤에 같은 불가능에 도전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나. 하나의 성공이 그 이상의 의미와 희생을 가지고 있다는 걸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현대 사람들은 역사라는 이름의 신화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초중반부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의 메세지와 연출 덕에 내 마음에 남는 영화가 됐다. 그러나 후반부가 우연히 내 취향에 잘 맞았을 뿐, <모아나1>에 비하면 실망적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다음으로 <위키드>. 이건 더빙판과 자막판 2개를 모두 감상했는데 자막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더빙판에는 자막이 없어대사를 놓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특히 노래 장면에선 어쩔 수 없이 발음이 부정확한 부분이 많았다. 더빙판에도 자막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시작할 때 나오는 줄거리 요약에 굴림체 자막을 사용한것도 아쉬웠다. 너무 퀄리티 떨어져 보여서 다른 서체를 선택했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아무튼 영화 자체에 대한 후기를 쓰자면, <위키드>는 어느 하나 흠잡을 부분이 없는 잘 만든 영화였다. 세계적으로 대성공한 뮤지컬이 원작이다 보니 음악들도 스토리도 좋았고, 소품과 배경도 매우 화려하고 예뻤다. 다만 내 마음에 와닿는 부분은 하나밖에 없어 처음 보고 난 후에는 기대 이하였다. 와닿았던 장면은 엘파바와 글린다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었는데, 두 번째 보고 나서야 왜 나에게는 영 심심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주인공인 엘파바가 너무 나 같았다.

나는 청소년 시절부터 딱히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성격이나 외모적인 문제가 아닌, 지나치게 예민한 기질때문에 나 자신을 내 통제하에 두려면 자발적인 아싸가 되는 방법밖에 없었다. 나 또한 엘파바처럼 남의 시선을 상관하지 않고 내 갈 길을 가는 사람이었고, 그럼에도 엘파바처럼 사실은 시선들이 신경 쓰였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처음 <위키드>를 봤을 땐 영화가 마치 엘파바의 인생극장같았다. 그래서 심심했던 것이다! 두 번째 봤을 때 그 사실을 깨달았고, 감동이 부족했던 이유는 나의 문제란걸 알았다.

그래도 처음 봤을때부터 감명 깊었던 함께 춤추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울었었다. 나에게도 글린다처럼 내가 외롭고 힘든 걸 알아준 베스트 프렌드가 있는데 그 애와 떠들고 웃으면서 많은 힘을 받았던 게 생각났었다.

 

두 번을 감상하며 내 눈길을 끈 건 색의 상징성이었다. 특히 후반부에 엘파바가 각성하는 장면 근처에 늘 있는 노란색이 인상적이었다. 노란 노을에 뛰어내려서 빗자루를 타는 활주로도 노란색이었는데 이걸 보니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는 벽돌 길을 노란색으로 고른 글린다가 떠올랐고, 글린다를 상징하는 색이 핑크색이 아닌 노란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파바가 초록색 피부인 것처럼 글린다가 가지고 태어난 색은 금발의 노란색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글린다 또한 엘파바에게 처음부터 '묘한 감정'을 느꼈던 게 남들은 모두 천사 같은 글린다,라고만 하는 와중에  엘파바가 그녀를 '금발'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엘파바가 사실은 괜찮을 리 없다는걸 알아본 것은 글린다 또한 남들의 시선에 그만큼 상처받고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일 텐데, 핑크색으로 치장한 건 금발이기만 했을 때 받은 어떤 무관심 같은 상처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엘파바가 공포스러운, 사악한 마녀를 가장하고 경고할 때에는 노랬던 노을이 핑크색으로 변한 것을 봐도 글린다의 핑크색은 거짓된 연기를 상징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초록색 에메랄드 시티에 외롭게 찍힐 핑크색 점이 된 글린다가 너무 안쓰러웠다. 노란색도 못된 핑크색이라니 얼마나 힘들까.

이처럼 영화로 감상하면서 <위키드> 속의 색채로 이 이야기가 말하는 바를 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가령 에메랄드 시티와 엘파바의 초록색은 누가 보느냐에 따라 어느 쪽이든 사악함 또는 정의, 타고남, 연기됨 등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결국 보이는 것은 관점에 달렸을 뿐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게 잘 표현됐다.

한편,  언뜻 중요한 것처럼 상징되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닌 색깔과 대비되는 것이 있다. 바로 영화를 본 우리와 글린다만이 아는 엘파바의 이야기다. 그녀는 중요한 건 내가 걸어온 길, 그리고 걸어갈 길, 나만이 알아도 상관없는 자신의 신념이라 외친다. 그 말대로 고작 별것 아닌 나를 감추기 위해 다른 색으로 치장하는 오즈는 얼마나 한심한가? 반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떨쳐내고, 더 넓은 세계와 자신을 깊이 배우러 떠나기 위해 기꺼이 악인을 연기하는 엘파바는 얼마나 빛나던지! 작중 오즈의 말마따나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나'를 연기하는 건 누구나 다 하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연기를 하게 된 사람의 신념에 따라 누군가는 납작해지고 누군가는 더 대단한 사람이 되는 걸 보니 재미있었다.


 

간만에 영화를 보고 왔는데, 좋은 영화 두 편을 보며 단순한 오락 이상의 경험을 하고 올 수 있어 좋았다. 화려한 장면들 속에서 의미를 찾고 전달하는 메세지를 곱씹는건 언제 해도 즐거운 것 같다. 단순히 영화의 만듦새를 떠나, 이런 감정과 생각을 남겨준 작품이라면 충분히 특별한 영화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영화 감상 후기는 트위터 사담계에서만 남겼는데 종종 생각을 정리해 블로그에도 포스팅해가고 싶다.